16세기(1501년-1600년까지의 시기) 편지 (원이 아바님께)
2022. 11. 18. 10:03ㆍ우정
원이 어머니의 16세기(1051년-1600년까지의 시기) 편지가 이 시대에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 원이 아바님께 -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이규태 코너, 조선일보 98년9월30일 ] 사부곡에서 옮김
여의는 딸을 가마에 태우면서 어머니가 울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은밀한 작업이 있었다. 두 눈에 꿀을 발라 보지 못하게 하고, 두 귀 를 솜으로 막아 듣지 못하게 하며, 대추씨앗을 어금니에 물려 웃지도 못하게 하고 나서 떠나보낸다. 시집가는 날 주변에서 놀려대는 수작 에 말려들지 않게끔 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평생을 보지도 듣지도 웃지도 못하는 무감각 무감정 인간으로 살 라는 숙명의 낙인을 그렇게 찍어 시집보냈던 것이다. 그후 친정아버 지의 첫 딸네집나들이에는 거친 맷돌을 지고가는 것이 법도로 돼있는 데 시집살이에서 복받치는 일이 생길 때면 맷돌갈이로 발산시키라는 감정조절 장치인 것이다.
이렇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부덕이요, 악처의 조건이었다.
달레의 '한국교회사' 서설에 보면 변변하게 먹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 죽은 아내가 가여워 눈물을 비쳤다는 단지 그 하나 이유만으로 선비사회에서 소외를 당한 양반 이야기가 나온다. 하물며 여인임에 랴. 양반집 젊은 어머니가 눈오는 날 밤 죽은아이 생각을 가눌 길 없 어 '나도 몰래 소매 적신다'는 시 한 줄 쓴 것을 두고 글 속에서 울 었다고하여 문중으로부터 책망을 받기도 했다.
4백12년 전 31세에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사부의 정을 백지에 꼬박꼬박 적어 합장한 것이 안동에서 발굴됐다. 이부자리 속에서 맞 바라보고 나는 당신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다고 말하면 당신은 내마음 을 어떻게 가졌나를 말하곤 했다는 그 사부곡의 정경은 가히 환상적 이다. 당신 여의고는 아무래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직설적 감정 표 현도 고정관념에서 신선하기 그지없다.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할머니가 한국에 와 여자대학들을 둘러 보며 활달한 학생들의 모습을 두고 한 말이 생각난다. 유교의 도덕에 억눌려 감정이 고갈돼버렸다는 선입감이 뿌리부터 배신받았다 하고 한국 여성에게는 전혀 다른 활달한 전통이 기층에 도도히 흐르고 있 다고 했다. 그 기층을 증명해 주는 희귀하고 값진 사부곡이 아닐 수 없다.
<원문>
원이 아바님께
병슐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이따 이 내 유무(遺墨) 보시고
내 꿈에 자셰 와 니르소
내 꿈에 이 보신 말 자세 듣고져 하야
이리 써녔네
자셰 보시고 날드려 니르소
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사뢸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를
아바 하라 하시논고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라
하늘아래 또 이실가
자내는 한갓 그리 가 겨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 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셰 니르소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하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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